8박 9일 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 치료를 했습니다. 집으로 치면 하수 배관 파이프 내부가 녹슬어 내경이 좁아졌다고나 할까 하여간 두꺼워진 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하반신 척추 마취를 하고 한숨 푹자고 일어나니 병실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간호간병 통합병동 2인실에서 8일간 버텼습니다. 그 병동에는 2인실 하나 빼고 전부 6-8인실로 환자 모두가 평균 연령이 80 가까이 되어 저는 나이를 말하기도 부끄러웠습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많았다고 기억되며 하루종일 병동 전체가 울릴 정도로 기침과 가래를 뱉어내는 분도 계셨고 특히 할머니들은 괄약근이 헐겁어 x을 싸대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종일 병동 자체가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세끼 밥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2인실 룸 메이트 역시 80대 영감님이셨는데 섬망 때문에 낮엔 자고 밤엔 매일 같이 난동을 부려서 거기 맞추다 보니 저도 낮엔자고 밤엔 차라리 2층 외래 복도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지루하면 링거를 여러개 달고 소변줄까지 꽂은 바퀴달린 쇠막대기를 끌고 병원 밖으로 새벽에 나가곤 했는데 몰랐든 광경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병원 앞 도로 건너 복도식 아파트에서 헤드렌턴으로 불을 밝힌채 뛰어 다니는 택배하시는 분, 도로에 빗자루질 하는 청소하시는 분들이 겨울 새벽 청명하게 보이는 하늘의 별들보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해 뜨기 2시간 전부터 병원에 출근하여 복도 청소, 화장실 청소와 병실 청소하시는 분들, 병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여 트럭에 싣는 분, 병원에 필요한 물품이나 약품들을 싣고와서 내리고 있는 분 등등 너무 많은 분들이 새벽을 열고 있었습니다.
15년째 산속에서 꽃 속에 파묻혀 새소리에 잠 깨며 살고 있는지라 너무나 생소한 풍경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치열한 생존노동이었습니다. 내가 너무 편하게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병동에는 간호사들이 하나같이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환자는 많고 간호사는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환자는 하루종일 병원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토했는데 간호사들이 불친절 하다거나 불러도 빨리빨리 안온다면서 서울 가면 안그렇다고 쌍욕을 해 대길레 내 눈에는 모두가 천사 같이 보이는데 순간 화가나서 왜 서울보다 지방이 의료비가 싼지 비교 해 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간호사 1인당 살펴야 할 환자수가 서울이 훨씬 적다고 생각되며 그만큼 서울 병원엔 간호사 숫자가 많고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니 의료숫가도 높은게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해대니 불평하시는 분의 입이 쑥 들어 갔습니다.
퇴원하는 날 내가 살던 병동 앞에 서서 모두들 평안하시라고 두손 모아 합장하며 허리숙여 기도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비규환 속에 있다가 산속 집에오니 극과 극이었습니다.
남은 생 건강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8박 9일 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 치료를 했습니다. 집으로 치면 하수 배관 파이프 내부가 녹슬어 내경이 좁아졌다고나 할까 하여간 두꺼워진 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하반신 척추 마취를 하고 한숨 푹자고 일어나니 병실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간호간병 통합병동 2인실에서 8일간 버텼습니다. 그 병동에는 2인실 하나 빼고 전부 6-8인실로 환자 모두가 평균 연령이 80 가까이 되어 저는 나이를 말하기도 부끄러웠습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많았다고 기억되며 하루종일 병동 전체가 울릴 정도로 기침과 가래를 뱉어내는 분도 계셨고 특히 할머니들은 괄약근이 헐겁어 x을 싸대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종일 병동 자체가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세끼 밥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2인실 룸 메이트 역시 80대 영감님이셨는데 섬망 때문에 낮엔 자고 밤엔 매일 같이 난동을 부려서 거기 맞추다 보니 저도 낮엔자고 밤엔 차라리 2층 외래 복도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지루하면 링거를 여러개 달고 소변줄까지 꽂은 바퀴달린 쇠막대기를 끌고 병원 밖으로 새벽에 나가곤 했는데 몰랐든 광경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병원 앞 도로 건너 복도식 아파트에서 헤드렌턴으로 불을 밝힌채 뛰어 다니는 택배하시는 분, 도로에 빗자루질 하는 청소하시는 분들이 겨울 새벽 청명하게 보이는 하늘의 별들보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해 뜨기 2시간 전부터 병원에 출근하여 복도 청소, 화장실 청소와 병실 청소하시는 분들, 병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여 트럭에 싣는 분, 병원에 필요한 물품이나 약품들을 싣고와서 내리고 있는 분 등등 너무 많은 분들이 새벽을 열고 있었습니다.
15년째 산속에서 꽃 속에 파묻혀 새소리에 잠 깨며 살고 있는지라 너무나 생소한 풍경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치열한 생존노동이었습니다. 내가 너무 편하게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병동에는 간호사들이 하나같이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환자는 많고 간호사는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환자는 하루종일 병원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토했는데 간호사들이 불친절 하다거나 불러도 빨리빨리 안온다면서 서울 가면 안그렇다고 쌍욕을 해 대길레 내 눈에는 모두가 천사 같이 보이는데 순간 화가나서 왜 서울보다 지방이 의료비가 싼지 비교 해 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간호사 1인당 살펴야 할 환자수가 서울이 훨씬 적다고 생각되며 그만큼 서울 병원엔 간호사 숫자가 많고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니 의료숫가도 높은게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해대니 불평하시는 분의 입이 쑥 들어 갔습니다.
퇴원하는 날 내가 살던 병동 앞에 서서 모두들 평안하시라고 두손 모아 합장하며 허리숙여 기도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비규환 속에 있다가 산속 집에오니 극과 극이었습니다.
남은 생 건강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